사랑, 죽음, 그리고 AI… 칸 라이언즈는 어디로 향하는가 [박윤진_서울라이터]
사랑, 죽음, 그리고 AI… 칸 라이언즈는 어디로 향하는가 [박윤진_서울라이터]
  • 박윤진
  • 승인 2023.07.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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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칸에 다녀온 지 어느새 한 달. 칸 라이언즈(Cannes Lions)와 관련된 마지막 글을 정리하며 떠오른 건 나태주 시인의 시였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멋진 캠페인들, 하나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흥미로운 세미나들. 칸 라이언즈가 사람이라면 자꾸만 궁금하고 계속 들여다보고 싶은 매력의 소유자였을 것이다. 평범하고 재미없어 보이던 캠페인도 알수록 놀랍고 볼수록 재미있는 놀라움으로 가득한 곳. 오늘은 칸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그랑프리 캠페인을 중심으로 칸 라이언즈의 큰 흐름을 살펴보고자 한다.

△ 칸의 사자는 인류를 사랑해

덥다. 지구가 뜨겁다. 40도 안팎의 폭염으로 유럽에선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다. 한국은 폭우로 최악의 장마를 보내는 중이다. 기후위기는 점점 더 가깝게 더 빠르게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인류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 이것은 칸 라이언즈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다.

두 발로 보여준 반전의 연설
투발루 정부: 최초의 디지털 국가


남태평양의 작은 섬 투발루는 기후 위기로 나라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기후 위기로 해수면이 점차 높아지면서 이미 두 개의 섬은 물에 잠겼다. 이러한 위기를 알리기 위해 투발루의 사이먼 코페 외무 장관은 무릎까지 물에 잠긴 수중연설로 기후 위기를 막아 달라 호소했다.

투발루 정부의 'The First Digital Nation' 캠페인. ⓒCannes Lions

더 나아가 투발루 정부는 광고회사인 The Monkeys와 세계 최초의 디지털 국가 'The First Digital Nation'을 만들었다. 50년에서 100년 후 완전히 물에 잠길 것으로 예측되는 투발루를 보존하기 위해 섬과 랜드마크를 복제하고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는 디지털 버전을 구축한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UN에 제출돼 인정 받는 과정에 있고, 이미 다른 9개 나라가 투발루의 영구적인 디지털 국가 지위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데 동의했다. 이 캠페인은 무려 21억 명의 사람들에게 도달하며 전 세계의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티타늄 부문 그랑프리를 포함해 칸에서만 총 8개의 상을 수상했다. 영토가 없는 국가의 선언, 기후 위기에 맞서는 투발루의 투쟁은 과연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마이크로소프트 세종대왕 빙의한 썰
ADLaM : 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알파벳


해외 광고제에선 유독 새로운 서체를 만든 캠페인에 호의적인 경향이 있다. 아… 이번에도 또 서체인가 하고 넘어갔던 캠페인이 이것이었다. 하지만 잠시 시간을 들여 들여다보니 역시나 놀라운 반전이 숨어있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듯 한 민족의 디지털 알파벳을 창제한 것이다. 서아프리카의 풀라니족은 세계 최대의 유목민 집단이다. 전 세계적으로 4000만 명이 넘는 그들은 모국어인 풀라르(Pulaar)어를 쓰는데 안타깝게도 전통을 전승하는데 글이 아닌 말에 의존했을 뿐, 알파벳이 없었고 이는 디지털로 기록된 적이 없어 곧 언어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들의 언어를 보존하기 위해 두 형제 Ibrahima와 Abdoulaye Barry는 약 5년 간 손으로 쓴 알파벳 ADLaM을 만들었고, 이후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와 함께 유니코드로 인식되는 사용가능한 알파벳을 제작했다. 글자체는 풀라니족의 얼굴 문신 및 생활 속 패턴 디자인을 연구해 제작했다고 한다. ADLaM은 현재 10억 대 이상의 장치에서 사용 가능하고, 언어 보존은 물론 풀라니 어린이들이 모국어를 공부하고 문맹을 퇴치 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이 캠페인은 디자인 부문 그랑프리와 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 트랜스포메이션 부문 그랑프리 외에도 총 12개의 상을 수상했다.

어디로 가야하죠, 마스터
마스터카드: 정착할 곳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후 약 1000만 명의 난민들이 폴란드 국경을 넘었다. 폴란드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따스하게 환영했다. 수많은 난민들은 폴란드의 주요 도시에서 피난처를 찾았고, 인구 과밀로 인해 이 도시들은 전례 없는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늘어나는 난민의 흐름을 더 작은 도시로 퍼져 나가게 해야 한다고 판단, 마스터카드는 이를 돕기 위해 난민들의 살 곳을 제안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제공했다.

마스터카드의 'Where to Settle' 캠페인. ⓒCannes Lions

마스터카드의 거래 데이터, 폴란드 통계청의 급여 데이터, 폴란드 부동산 및 직업 포털 서비스의 데이터를 결합해 새로운 피난처를 찾는 난민들이 집과 일자리를 비롯해 정착하기에 가장 적합한 최적의 장소를 소개해주는 것이다. 이는 난민에게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폴란드 소도시의 성장을 촉진했다. 이 캠페인은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 부문 그랑프리를 비롯해 총 13개의 상을 수상했다.

△ 죽음을 차별하지 않는 사자들
생의 끝엔 죽음이 있고, 죽음은 삶과 이어진 결말이지만, 광고에서는 유난히 죽음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다. 광고의 1원칙, 되도록 웃고 행복하고 밝은 모습을 보여줄 것. 하지만 칸 라이언즈에서는 색다른 방식으로 무거운 주제를 다룬 캠페인들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CALM x ITV: 마지막 사진


수 년 간 코로나로 인한 봉쇄와 전례 없는 생활고로 영국의 자살률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삶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대화'. 하지만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말을 아꼈다. 우리는 자살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늘 울거나 절망하고, 패배자처럼 낙담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은 그것과 거리가 멀다. 어쩌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도 상대방의 우울을 감지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The Last Photo' 캠페인은 그렇게 태어났다.

'The Last Photo' 캠페인. ⓒCannes Lions

영국 최대의 상업 TV 방송국인 ITV는 CALM과 협력해 대담한 캠페인을 기획했다. 일년 중 가장 행복한 날, 행복하게 미소 짓는 사람들의 사진을 런던 중심가에 전시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사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마지막 사진임을 밝힌다. 영상 또한 실제 주변인들이 촬영한 고인의 밝고 행복한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며, '자살이 항상 자살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한 줄의 메시지를 전한다. 큰 여운을 남기는 이 캠페인은 16억건의 노출수를 달성하며 큰 이슈가 됐고, 이를 통해 160여건의 자살을 예방했으며 기부금 또한 전년 대비 400% 증가했다. 이 캠페인은 필름부문 그랑프리를 포함해 총 27개의 상을 수상했다.

살아나는 시체들의 밤
파트너스 라이프: 라스트 퍼포먼스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보험이 부족한 국가 중 하나로 뉴질랜드인의 29%만이 생명보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뉴질랜드 생명보험사인 파트너스 라이프는 이런 국민의식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방법은 완전히 새로운 형식이었다.

파트너스 라이프 '라스트 퍼포먼스' 캠페인. ⓒCannes Lions

뉴질랜드의 범죄 드라마 'The Brokenwood Mysteries'에는 매주 에피소드마다 살해당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 이 시체 캐릭터들이 뭔가를 말하도록 추가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매 에피소드마다 갑자기 시체가 눈을 번쩍 뜨고는 "이건 예상치 못한 일인데… 나... 생명보험은 없어"라는 대사를 말하게 한 것이다. 사람들이 생명 보험에 가입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죽은 자의 뒤늦은 깨달음을 보여준 이 캠페인은 헬스 & 웰니스 라이언즈 부문 그랑프리, 크리에이티브 전략 부문 골드 라이언 등 10개의 상을 수상했다.

△ AI는 어떻게 칸을 지배했나
저거 AI 아냐? 요즘 AI 의심병에 걸렸다. 뭔가 지나치게 아름답거나 의심스럽게 완벽할 때 인공 지능이 만들거나 영향력을 미친 게 아닌가 의심하는 신종병이다.(비슷한 병으로는 '저거 합성 아냐?병'이 있다.) 살면서 인공지능이 이토록 가깝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AI는 이미 제품을 혁신하고 과학 연구를 가속화하고 의료 서비스를 개선하고 창의적인 환경을 만들며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올해 칸 라이언즈 역시 AI라는 단어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AI를 활용한 크리에이티브 역시 큰 관심을 받았다.

최고 스타가 우리 가게 광고에 등장?!
캐드버리 셀러브레이션스: 샤룩 칸 마이 애드


캐드버리 셀러브레이션스는 인도의 소상공인을 위한 생성형 AI 기술과 위치 데이터를 활용해 개인화된 광고 템플릿을 제작했다. 그리고 다 된 AI에 발리우드 최고 스타 샤룩 칸 뿌리기!

캐드버리 셀러브레이션스 '샤룩 칸 마이 애드' 캠페인. ⓒCannes Lions

샤룩 칸은 인도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국민배우로, 이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를 이용해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이 자신의 브랜드를 광고하게 한 것이다. 먼저 샤룩 칸이 출연하는 광고 템플릿을 만들고 AI 기반 얼굴 매핑과 음성 로그를 사용해 업체 이름을 넣게 했다. 그 다음 이 광고를 매장에서 가장 가까운 소비자에게 타기팅(targeting)해 광고했다. 이 캠페인은 14억회 이상 노출되며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브 효과 그랑프리 외에 총 9개의 상을 수상했다.

입보다 눈으로 먼저 먹는 시대
헝거스테이션: 잠재의식의 주문


지금 사우디아라비아는 엄청난 디지털 붐을 경험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음식 배달앱인 헝거스테이션은 어떻게 하면 가장 혁신적인 음식 배달 서비스로서의 위치를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하여 사상 처음으로 사용자의 잠재의식을 이용해 온라인 주문을 할 수 있는 혁신적이고 스마트한 기능을 도입한다.

헝거스테이션 '잠재의식의 주문' 캠페인. ⓒCannes Lions

평균적으로 성인은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기 전 1년에 약 132시간을 고민하는데 심리학자들은 그것을 '선택과부하'라 부르고 우리는 '결정장애'라고 말했었다.(요즘 이 단어는 장애를 비하한다는 이유로 잘 쓰지이 않는다) 헝거스테이션은 카메라와 첨단 알고리즘을 이용해 눈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AI를 통해 잠재 의식이 가장 먹고 싶어하는 레스토랑 목록을 제공한다. 나도 모르는 내 식욕을 찾아주는 AI라니, 한국 도입이 시급합니다! 이 캠페인은 크리에이티브 커머스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띵동! 월드컵 우승 트로피가 배송 중입니다"
페디도스야(PedidosYa): 월드컵 딜리버리(World Cup Delivery)


축구에 열광하는 나라, 아르헨티나. 특히 36년의 기다림 끝에 월드컵 우승을 하고 흥분으로 폭발한 아르헨티나 전국민은 영광의 트로피가 언제 국내에 도착할까 기다리고 있었다. 월드컵 우승을 축하하는 행사가 진행되는 그 때, 전국의 절반에 해당되는 지역에 '주문이 배송 중입니다'라는 가짜 배송 알림이 왔다. 뭐지? 해킹인가? 피싱인가? 당황하는 찰나, 사태파악을 마친 순간 불안은 기쁨으로 뒤바뀐다.

페디도스야(PedidosYa) '월드컵 딜리버리(World Cup Delivery)' 캠페인. ⓒCannes Lions

음식 배달앱 PedidosYa가 음식 대신 월드컵 트로피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오고 있는 우승팀의 비행편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AI의 도움으로 가능했으며 구글맵의 API와 전 세계 모든 항공편의 실시간 위치를 보여주는 Flight Aware의 API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우승팀 비행기가 카타르 땅에 이륙하자마자 모든 PedidosYa 사용자는 '주문이 진행 중입니다'라는 알림을 받았고 선수들과 함께하는 월드컵 트로피의 여정을 함께할 수 있었다.

요즘 백지의 공포를 덜어주는 카피라이터의 유일한 친구는 AI다.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고민하다 챗GPT에게 칸 라이언즈의 수상작에 대해 요약해달라고 부탁했다.

"칸 라이언즈 수상작은 크리에이티브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 감동적인 이야기, 높은 수준의 기술과 시각적 효과를 갖추며,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브랜드 인식과 타깃 고객을 성공적으로 다루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 ChatGPT의 요약처럼 제 70회 칸 라이언즈는 사랑과 죽음을 다룬 감동적인 인류애와 행동을 촉구하는 사회적 메시지에 반응했다. 또한 AI와 같은 높은 수준의 기술과 시각적 효과를 높이 샀다. 그리고 이 모두는 크리에이티브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했다.(고마워, Chat)

덴츠의 글로벌 최고 문화 책임자인 진 린(Jean Lin)은 "모든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은 아이디어 엔지니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앞으로 기술과 지식은 크리에이티브를 확장하는 크리에이터의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지금 성장을 꿈꾸는 크리에이터라면 칸 라이언즈를 조금 더 자세히 더 오래 들여다보길 추천한다. 칸 라이언즈는 세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가장 흥미로운 나침반이자, 당신의 크리에이티브 파워를 업그레이드 해줄 새로운 무기이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아야 놀랍다. 오래 보아야 영감을 준다. 칸 라이언즈,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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